-Save Tonigth(Mindi Abair)을 듣고 쓴 글입니다!

- https://youtu.be/O_n2yIIXqKc로 가시면 들으실수있습니다!

유툽 자체로 재생이 되는게 갑자기 안되서 링크로 남깁니다 










*



 

프랑스 와인 좋아하오?

 

   두 번째로 듣는 물음이었다. 저녁 하늘이 그냥 두고 보기 아까울 정도로 예뻐서 커튼을 치지 못했다는 말을 한 애인은 언제 나처럼 똑같아 보였다. 그 손에 들린 와인이 꼭 제 대답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릭은 기쁜 듯이 웃더니, 대접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남기고 부엌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사 하나가 빠져 한쪽으로 기운 옷걸이에 외투를 걸으면서 릭이 말한 대로 창문 너머의 하늘을 잠깐 감상했다.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물감을 찾고 또 찾고, 색을 섞고 또 섞었다던 어떤 화가가 바래온 색이 꼭 저런 하늘일까 싶을 정도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보석 같았다. 릭은 이런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는걸 좋아하고는 했다.

 


난 프랑스 와인을 좋아하오.”


 

   투명한 와인 잔에, 붉은 액체가 기울여 차오르기 시작했다. 와인이 급하게 좁은 입구 밖으로 빠져나갈 때 의례 그렇듯이 공기가 차오르고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릭의 마음인 듯 해, 벨져는 천천히 하라고 할 정도였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살짝 잠기도록만 붓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지만 릭은 반절이 넘도록 와인을 쏟아내었다. 잔을 건네받았을 때는 묵직함이 먼저 느껴졌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적 있던가?

 


처음 마신 와인이 프랑스 와인이라서,”


 

벨져는 코로 향을 먼저 음미했다. 묵직한 알코올 향에 포도의 시고 단 냄새가 섞여들었다.


 

그래서 좋아한다고 했지.”


 

-

   잔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평소처럼 맑은 울림이 아니라 무겁고 둔탁한 소리였다. 릭은 먼저 한 모금을 입에 담았다. 촉촉해진 입술을 한참을 그대로 두더니 결국 혀를 살짝 내밀어 남은 방울마저 훔쳐 마셨다.

 


어렸을 때, 제일 먼저 불시착한 나라가 프랑스였거든.”

개선문에 떨어진 일을 말하는 건가?”

맞소. 내가 그 뒤에 이야기도 해준 적 있었나?”


 

   대답하지 않고 벨져는 천천히 잔을 돌렸다. 안에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릭의 과거를 듣는 게 처음이 아닌데, 매번 들을 때 마다 처음이 되는 이유는 마치 엽서처럼 알려주기 때문이었다. 짧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한데모아 엮어야 그제야 하나의 앨범이 될 수 있었다. 릭은 말을 이어나갔다.

 


돈도 언어도 모르는데 좋다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가 집시 한명을 만났소. 친절한척 몽마르트를 안내해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내 지갑을 털려고 온 거였지. 그 때 내 주머니에 캐러멜 두 개 정도 들어있었는데 나한테서 캐러멜을 훔치더니 막 화를 내고 욕도 했소. 난 억울했는데 그래서 몽마르트는 언제 안내해주냐고 하니까 미친놈 보듯이 보더군. 그리고 막 날 데려가는데 집시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공터였소. 거기서 와인 한잔을 얻어마셨지.”


 

그리고?


 

이번에도 릭이 엽서 한 장만 건네줄까 싶어서 그는 다음을 재촉했다. 릭은 부드럽게 그 때를 생각하며 좋은 추억을 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집시들이랑 어울려서 춤도 좀 배우고, 또 못 춘다고 욕 좀 얻어먹고. 내가 프랑스어로 욕은 꽤 잘 하오.”


 

   작게 웃으면서 와인을 한 번 더 마셨다. 벨져도 따라서 잔을 기울였다. 프랑스산 와인에서 이런 맛이 났던가. 달면서, 달콤하기만 한데 이렇게 쓴 맛이 같이 공존할 수 있었는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벌써 제 추억에 취했는지 릭이 느긋이 말했다.

 


무척 달지 않소?”


 

   이번에는 먼저 손을 뻗어서 아랫입술에 고여 있는 와인을 닦아주었다. 생각하지 않았지만 손에 입술이 닿자 의도적으로 손끝으로 문질러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고 누구도 먼저 피하거나 깜박이지 않았다.

 


   2인용의 넓지도 작지도 않은 둥근 식탁. 두 사람의 고개가 조금만 앞으로 나오면 입술이 충분히 맞물릴 수 있는 거리였다. 릭이 먼저 눈을 감고 입술을 조금 벌렸다. 조금 더 입술을 누르던 손이 그대로 미끄러져 턱으로 내려와 천천히 앞으로 이끌었다. 그리곤 소리 없이 입이 포개졌다. 와인을 음미하는 것처럼 천천히 충분히 감상 할 수 있도록 하는 키스였다.

 


   벨져는 단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게 릭에 한해서라면 거절하지 않을 만큼 좋았다. 둘은 서로의 숨결을 마시는 것처럼 오랫동안 키스했다. 릭이 눈을 떴을 때, 벨져는 아쉬운 기분을 느끼면서도 순순히 놓아주었다. 숨이 찼기 때문인지 도수 높은 와인 때문인지 릭의 뺨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달군."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벨져는 끝내 왜 이 모든 요소들이 쓴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릭이 켜둔 촛불이 부산스럽게 흔들리고 릭은 남은 와인을 몽땅 털어 넣었다. 릭의 말대로 황홀에 가까운 단 맛은 마실 때뿐이고, 전부 빠져나가고 나면 입이 텁텁할 만큼 아려왔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릭도 눈치 챘을까, 벨져는 궁금해졌다.





**

 

   릭의 집은 도심에서 살짝 떨어진 주택형 임대 아파트였다. 여러 가구가 모여 살아서 밤에 누워있으면 소란스러운 소리가 파이프를 타고 넘어오는 듯한 집이었다. 이 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게 무엇이냐 물으면, 침대였다. 매트릭스가 시도 때도 없이 가라앉던 그 싸구려 세미더블 침대가 가장 먼저 없어진 연유를 알면서 보지 않은 척 했다.


   단지, 텅 빈 공간을 보면 자신들이 그 위에서 보낸 추억이 먼지처럼 뒹군다고 생각했을 다름이었다. 딱히 젊은 나이도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불타오르지 못할 나이도 아니었기에. 둘은 쉬는 날, 해가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오던 기념일 여타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릭이 그것을 가장 먼저 치워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걸쇠를 고정하던 못처럼 언제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을 줄 알았는데, 왜 무언가를 잃는다는 건 이렇게 갑작스럽다는 걸 잊었을까. 릭과 지내면서 그 부드럽고 포근한 면에 빠져서 그 역시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침대를 시작으로 점차 많은 가구가 사라져갔다. 두 사람이 앉아 영화를 보던 소파도, 릭이 큰마음 먹고 샀다던 텔레비전도 없었다. 부엌 벽을 장식하고 있던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은 붙어있었다는 누런 흔적만 남겼을 뿐 전부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는 그에게 낡은 조각은 의미가 없었다.

 


   새로운 준비는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았지만, 확실한 건 그의 단호함만큼은 의심 할 수 없었다. 한 때는 잠깐 그가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걸 처분하고 3년 내내 살아왔던 집을 넘겼을 때, 돌아올 생각이 완전히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니 벨져는 왜 그가 오늘, 자신을 집으로 초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제, 릭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건 벨져 홀든 뿐이었다.


 

   불타는 통나무 같은 연인이 이 집에 있었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내며, 여전히 사랑을 지속하지만 내일이면 지속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릭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보이는 단호함은 상냥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언젠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집을 보며 그는 릭에게 가지 말라고 할까 고민했다. 릭은 옷장에 옷을 끄집어서 상자에 차곡차곡 담는 중이었다. 목 안에 말이 걸려서 뱉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벨져는 자신과 덩치가 비슷한 릭을 아무 말 없이 끌어안았다. 릭은 차가운 몸이 제게 다가오자 흠칫- 하고 놀랐으나 이내 눈에 들어오는 은색의 머리칼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어붙은 그를 꼭 안아주었다. 벨져는 그제야 제 목에 걸린 게 괴로움이란 걸 알았다. 그에게선 한낮의 오후 햇빛 같은 냄새가 나곤 했다.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그런 냄새가.

 


   우리가 만난 게 언제였지. 이젠 기억도 헷갈리는 먼 옛날이었다. 몇 년간, 벨져는 눈을 뜨면 릭을 볼 수 있었고 원한다면 찾아올 수도 있었고 그의 손을 꼭 잡으면 조금 퍼석하게 마른 사랑의 말 또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몇 년을 이렇게 살았지? 그를 만난 게 제 인생의 절반도 되지 않는데 그와 함께하기 전 일들이 먹힌 듯 모두 까무룩 하게 잊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딘가 어색했고, 조금 퍽퍽했으나 그것에 의심은 한 톨도 없었다.

 


   릭은 벨져에게 같이 떠나겠냐고 속삭였다. 뒷목에 얼굴을 파묻고 놔주지 않을 듯 꽉 끌어안았으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릭은 빙그레 웃더니 뒤를 돌아 벨져를 제대로 끌어안았다. 릭은 그런 벨져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상냥했고 그래서 더 잔인했다.

 



***



   와인은 벌써 밑바닥을 보였다. 매번 묵직하게 잔에 부어 마시니 한 병이 쉽게 동이 났다. 릭은 연한 베이직 니트를 입고 입었고 신발은 편한 부츠를 신었다. 아까 겉옷을 걸 때 옆에 걸린 검은색 코트를 보았다. 이제 두 사람이 연인으로 불 탈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어디로 가지?

   굳이, 이 질문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그러나 릭에게 해줄 그럴듯한 인사말은 준비해 오지 못했다. 끝내 그는 마음을 정리 할 수 없던 게 이유였다. 답답한 기분이 들어 아까 릭처럼 와인을 입에 털어 넣었다. 릭은 그런 벨져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울지 마시오.”


 

설사 그대가 울더라도 그건 내가 떠난 후에 그렇게 해주시오. 릭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조적인 얼굴을 했다.


 

참 이기적이지.”


 

잘 아는군.”


 

   아랫입술을 한번 깨물었다가 어찌 할 수 없음을 알고 그대로 놓아줬다. 이 이별은 이기적이고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떠날 결정을 했는지, 왜 그런 건지 릭은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단지, 권했고 같이 하지 않기로 하자 이별을 건넸다. 끝까지 릭다운 결정이라 원망하고 싶어도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마지막으로,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넌 가겠지. 그건 의미 없는 일이니까.”


 

잠시 물끄러미 벨져를 보던 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느리고 느리게.


 

하지만 그대의 존재가 내게 의미 없다는 뜻으로 생각하지는 마시오.”



   해가 뜨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어떤 감정은 낮보다 밤이 위로가 되는 법이다. 릭은 벨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손가락 하나하나를 어루만졌다.


 

그대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최고로 반짝이는 존재였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지난 시간동안 내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게 만들어주었소.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을 깜박여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눈물이 흘러내렸을 게 분명했다. 떠나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천하의 벨져 홀든이 사랑했다는 소리를 듣고 울 수 있음이 신기했으나 그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벨져는 릭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

 

 

 

 

 

 

 

그러니 오늘 밤을 아끼자.

새벽이 오지 않도록 말이야.

내일이 오면

나는 가야해.